“관운장은 신이 되었으나, 인간은 그를 잊지 못했다.”
관우가 참수당했다는 소식은 곧 유비의 귀에 들어간다.
그는 우선 애도하지 않았다. 분노했다.
“관운장은 나의 형제다. 그의 원수는 곧 나의 원수다.”
손권은 관우의 머리를 조조에게 보냈고,
조조는 후장을 명했다. 하지만 유비는 그것을 **“위선의 조문”**이라 일축하고,
바로 오나라 정벌을 결의한다.
그것이 이릉 전투(猇亭之戰).
제갈량과 조운, 황충, 마량 등 온 촉한이 만류했지만,
유비는 듣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 싸움은 전쟁이 아니라, 형제의 복수를 위한 장례식이었다.
결과는 참패.
관우의 죽음은 유비를 망치고,
촉한의 국운을 무너뜨리는 시발점이 된다.
그만큼, 그는 한 나라를 이끄는 감정의 중심이었다.
이릉 패전 이후, 촉한의 실권은 제갈량이 쥐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관우는, 단지 탁월한 무장이자 정치적 실책을 남긴 인물이었다.
『출사표』에는 관우의 이름이 없다.
『장군연표』에서도, 관우는 감정이 아닌 전력적 평가로만 언급된다.
“운장은 군령을 경홀히 여겼고, 지휘관을 멸시하였다.”
이는 단지 질투나 미움이 아니다.
제갈량에게 관우는 조직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불안한 재능이었다.
위대한 무인이었지만, 치명적으로 고립된 존재였다.
그의 명예는 높았으나,
그 명예가 전쟁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민중은 달랐다.
관우가 죽은 이후부터, 그의 신격화는 폭발적으로 일어난다.
관우는 이제 단지 군인이 아닌,
국가가 숭배하는 공식 신령이 된다.
그의 위패는 전국 각지의 관제묘에 안치되었고,
그는 문묘(文廟)에 공자와 함께 제향되는 유일한 무인이 된다.
왜 하필 관우였을까?
장비도, 조운도, 황충도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관우는 **“사람들이 신이 되어주기를 바랐던 사내”**였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놀랍게도, 관우는 단지 무신(武神)에 그치지 않았다.
관우는 무인이었지만, 싸움을 넘은 세계에서 더 강력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법과 질서, 신뢰와 약속, 그리고 국가의 얼굴”**이 되었다.
관우는 패했다. 형주를 잃었고, 목숨도 잃었고, 형제를 잃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잊히지 않았다.
천하에 수많은 무장이 있었으나,
죽은 뒤 천년을 넘게 살아있는 자는 단 하나였다.
“운장(雲長)은 죽었으되, 그 의는 천하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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