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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열전 #4 관우 (상)편

소설 글쓰기/삼국지 열전

by Nowbrief 2025. 5. 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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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 열전 : 

관우(關羽) 上 – 피의 방랑, 의(義)의 맹세

 

“내가 죽더라도, 의는 죽지 않는다.”
그 사내는 그렇게 신이 되어갔다.

 


 

1. 뿌리 없는 사내 – 이름 앞에 죄를 지닌 자

 

관우는 출신지부터가 강인한 황무지의 사내였다.

하동 해현, 지금의 산서성 운성 일대. 척박한 대지 위, 촌민들조차 검은 흙먼지를 삼키며 살아가던 땅에서 그는 태어났다.

 

그러나 이름도 성도, 처음부터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삼국지』 진수 본기에는 관우의 출생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다. 단 하나, 『삼국지연의』보다 훨씬 오래된 이설들 속에서 **“젊은 시절,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고 도망쳤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죽을 죄를 짓고 강호를 떠돈 이 사내는, 언젠가부터 스스로를 “운장(雲長)”이라 불렀다. 이름조차 스스로 다시 짓는 운명. 그 시작은 이미 ‘영웅담’이 아닌 ‘망명록’에 가까웠다.

 

그런 그가 천하에 우뚝 서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지 ‘무용’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살아남았고, 형제를 찾았으며, 신화를 만들었다.

 


 

2. 도원결의 – 피를 나눈 혈맹은 진심이었는가

 

도원(桃園), 복숭아꽃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

그곳에서 세 사내가 술잔을 부딪쳤다. 유비, 관우, 장비.

 

“같은 날에 태어나진 못했으나, 같은 날 죽기를 원한다.”

 

이 장면은 누구나 아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사실’이 아니다.

『삼국지』 본기에는 도원결의라는 기록은 없으며, 단지 유비와 관우, 장비가 항상 함께 움직였다는 말만 등장한다.

그럼에도 이 장면은, 『연의』의 천재 작가 나관중에 의해 삼국지 전체의 정서적 주춧돌이 된다.

왜?

관우를 단지 무장으로 그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피보다 진한 의리”라는, 당대 중국 사회가 추구한 가치의 상징이어야 했다.

 

실제로도 관우는 이 맹세를 평생 지켰다.

어떤 권력의 유혹에도, 패배의 공포 앞에서도, 관우는 유비를 형님이라 불렀고, 그의 아내들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여겼다.

그것은 시대의 충절도, 상급자에 대한 예도 아닌, ‘스스로 정한 법’이었다.

 


 

3. 유비를 위해, 칼을 빼다 – 황건적과의 첫 전장

 

관우가 처음 이름을 드러낸 것은 황건적의 난이었다.

중원 전역이 종교와 굶주림, 절망에 찌든 민중 반란으로 불타던 시절.

황건적은 신흥종교인 ‘태평도’의 깃발 아래 민심을 얻었고, 수십만의 농민군이 몰려들었다.

 

유비는 가족도 없이 떠도는 수염 없는 촌호족이었다. 관우와 장비는 그의 곁에 있었다.

이 세 사람은 ‘의병’을 일으켜 황건적 토벌전에 투입되었고, 현장에서 모두가 놀랄 전공을 세운다.

 

관우는 적장을 단칼에 베었고,

장비는 갑옷도 입지 않고 돌진해 성벽을 무너뜨렸으며,

유비는 전장을 통제하며 천부적인 지휘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세 사람은 ‘이각·곽사’의 난에서, 조조, 원소, 공손찬 등 당대 실력자들에게 전전하는 부유하는 군벌로 떠돌게 된다.

이때부터 관우의 칼은 어느 군주도 아닌, 오직 유비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관우는 비로소 ‘신화적 무장’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다.

 


 

4. 백마의 전투 – 조조가 탐낸 남자

 

위나라 조조. 냉혹한 전략가이자, 영웅을 알아보는 데는 귀신 같은 촉이었다.

 

유비가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고, 조조는 관우를 포섭하기 위해 ‘백마 전투’에 그를 파견한다.

적장은 안량(顔良). 원소 진영의 가장 용맹하다고 소문난 호장수였다.

 

그러나 전장에 나선 관우는,

안량을 말에서 끌어내려 단칼에 베어버린다.

피가 튀었고, 군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관우를 바라보았다.

 

조조는 탄복했다.

 

“운장은 하늘이 내린 장수로다!”

 

그는 관우에게 금백 전갑(황금 갑옷), 수십 필의 말, 고급 식량, 하후돈조차 부러워할 봉급을 하사한다.

 

그러나 관우는 말한다.

 

“주공의 은혜는 깊사오나, 제 형님 유비의 생사를 모르니, 이 몸이 머물 곳이 없습니다.”
“내 형님이 살아계시면, 이 은혜를 어기고라도 그 곁으로 가겠소.”

 

곧 관우는 조조의 후한 대접을 뿌리치고, 유비의 처자식과 함께 말을 달려 유비를 찾아 떠난다.

 


 

5. 조조를 등진 대가 – 그가 신이 되기 시작한 순간

 

조조는 이탈한 관우를 쫓지 않았다.

그는 알았다. 관우는 설득으로 얻는 장수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날 이후, 관우는 ‘충의’의 화신으로 중원의 민중들 속에 박힌다.

 

이 사건은 단순한 이적이 아니었다.

**“충성보다 더 깊은 의리”**라는 개념을 관우는 만들어냈고,

그 이후 그 어떤 무장도 따라갈 수 없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아직 싸우기 전이었으나, 이미 무장들 중 ‘우두머리’였다.

 


 

6. 상편의 결말 – 칼은 들었고, 적은 아직 많았다

 

관우는 드디어 유비와 재회한다.

그 칼은 이제 유비의 깃발 아래, 자신이 원한 전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장비는 점점 불편해지고,

형주를 둘러싼 전운은 다가오며,

손권과의 관계는 얼음처럼 깨지기 시작한다.

 

관우의 비극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직 누구보다 강했다.

 


 

🔖 다음 예고 – 『중편: 형주, 패자의 성채가 되다』

 

  • 유비의 북벌과 관우의 형주 수비는 왜 동시에 벌어졌는가?
  • 미방, 부사인의 배신은 운명이었는가 자업자득이었는가?
  • 번성 공략, 조인을 무릎 꿇게 한 천하의 기세는 왜 무너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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