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열전 #1 – 조조 下 : 권력과 기록 사이에서
전쟁은 끝났다.
조조는 이겼다.
원소는 무너졌고, 유비는 떠났고,
황제는 침묵 속에 남았다.
조조는 이제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 되었고, 황제를 앞에 두었으며,
정치는 그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그런데 그는 그 순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인(大人)의 뜻은 하늘과 같아,
바다보다 크고, 길보다 멀다.”
– 조조, 「단가행」
조조의 시는 칼보다 날이 서 있었다.
그 안엔 승리자의 오만도,
패배자의 후회도 없었다.
다만, 고독한 자의 조용한 독백이 있었다.
자신이 만든 세상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자신의 죽음 이후,
그 이름은 칭송이 아니라 비난으로 남을 거란 불안.
조조는 아들들에게 정권을 나눠주었지만,
그 안엔 균열이 있었다.
조비와 조식, 두 사람의 갈등은
조조가 생전에도 풀지 못한 숙제였다.
220년, 조조는 생을 마쳤다.
그는 황제가 아닌 ‘왕’으로 죽었다.
그가 끝내 오르지 않은 자리.
그러나 사실상 그 누구보다 오래 그 자리에 머문 사람.
조비는 곧 황제를 자칭하며 ‘위’를 세웠고,
조조는 시호로 ‘무제(武帝)’라 불리게 된다.
죽음 이후, 그는 비로소 황제가 되었다.
조조 下편은 권력자가 아닌,
기록을 의식한 인간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는 누구보다 날카롭고,
누구보다 멀리 봤으며,
누구보다 많은 이들의 비난을 알면서도 걸었다.
그가 최후에 선택한 건
왕좌가 아니라, 기억이었다.
조조는 칼로 세상을 바꿨지만,
붓으로 자신을 남기려 했다.
그것이 진짜 권력자다.
사라진 뒤에도, 시대를 설계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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